1. 피아니스트(2002) 영화 소개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드계 유대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Wladyslaw Szpilman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2002년 전기 드라마 영화입니다. 영화의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이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며 폴란스키 감독 본인 역시 유대인 격리 시설인 게토에서 탈출하였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바르샤바로 실제 바르샤바와 폴란드의 다른 지역들에서 촬영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주인공인 바르샤바의 피아니스트 '스필만'을 연기한 배우는 에이드리언 브로디로 이후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광범위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3개의 아카데미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에 모든 역경에 맞서 생존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를 강렬하고 감성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2. 영화 피아니스트 스토리
영화는 유망한 경력을 가진 성공적인 음악가였던 스필만의 전쟁 이전의 삶으로 시작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던 스필만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녹음하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하여 황급히 집으로 도망칩니다. 1939년 그렇게 나치는 바르샤바를 완전히 점령하게 되고 이후 스필만의 삶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됩니다. 그들은 바르샤바 내의 유대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적용시킵니다. 유대인은 2천 즐로티 이상 소유하지 못하고 공공장소, 벤치, 등을 사용할 수 없으며 인도로 걷지 못하게 하였고 유대인은 출입하지 못하는 가게들도 생겨났습니다. 또한 유대인은 외출 시 유대인이라는 표식으로 완장을 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모자라 1940년 나치는 40만 명의 유대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게토라는 거주구역을 설립하였고 그곳에서만 생활할 수 있게 도로를 차단하였습니다. 스필만은 이 참상 속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며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유대인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나치는 1942년 게토 구역 속에서 노인, 어린아이, 여자 등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 시키려 하였습니다. 스필만 역시 그 무리 속에 이동 중이었으나 유대인 경찰이던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스필만 혼자만 그 행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가족들과 같이 있고 싶다며 소리치자 유대인 경찰은 긴박한 어조로 너만 살려주는 것이라며 스필만을 살려주었습니다. 이후 게토에는 젊은 유대인 남성들만 남게 됩니다.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넘치고 작은 실수에도 매를 맞으며 일하던 스필만은 시내에서 옛 동료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며 게토에서 도망칩니다. 스필만은 친구와 또 그의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1944년 8월 1일에 대대적인 유대인 독립 무장봉기가 바르샤바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이로 인하여 85% 이상의 바르샤바 건물이 파괴되고 스필만의 거처 역시 파괴됩니다. 갈 곳을 잃은 스필만은 이전에 자신이 도망쳤지만 이제는 폐허가 된 유대인 격리 구역 게토로 숨어들게 됩니다.
3. 스토리 결말
폐허가 된 게토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스필만은 피클 깡통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려는 순간 독일 장교 한 명에서 발각이 됩니다. 죽음의 위기 속에 독일인 장교는 스필만의 정체에 대해 묻습니다. 스필만은 유대인이며 이전에 피아니스트로 일했다는 것까지 이야기합니다. 독일 장교는 무슨 흥미가 생겼는지 피아노 앞에 스필만을 데려갑니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때 스필만은 쇼팽의 녹턴 No 20번을 연주합니다. 스필만은 그간의 모든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이 연주를 끝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쩌면 다시는 만져보지 못할 줄 알았던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쁨, 그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자신의 연주에 담아냅니다. 연주가 끝나고 독일 장교는 인종과 나라를 넘어서는 인류애를 느꼈는지 그를 살려주며 먹을 것도 제공해 줍니다. 그렇게 스필만을 가끔 보살펴 주던 독일 장교는 그에게 마지막 음식과 옷을 건네주고 나치가 바르샤에서 물러나자 함께 철수합니다. 다시 일상의 바르샤바로 돌아온 스필만은 어느 날 친구에게 어느 독일 장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신이 포로로 잡혀있고 스필만이라는 사람을 살려줬으니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그 장소로 가보지만 이미 포로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된 이후였고 스필만은 장교를 찾으러 길을 나서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4. 실존 인물 ' 피아니스트 : 블라디슬로프 스필만'과 영화 이후 이야기
이 영화는 실존인물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실화입니다. 스필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았던 유대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1911년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여 피아노에 큰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회고록으로 쓰였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독일 장교 호젠펠트를 찾아 나서는 여정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스필만은 자신을 도와주었던 호젠펠트가 전쟁 후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필만은 수용소 당국에 편지를 보내 그의 석방을 간청하고 그의 친절과 용기를 증언했다고 합니다. 슬프게도 호젠펠트는 1952년 포로 상태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회고록이 발간되고 재발견되면서 호젠펠트의 추모를 기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져 독일 고향에 추모비를 건립하고 그의 일기와 편지를 출판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고 합니다.
5.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스필만은 왜 쇼팽의 곡을 연주했을까?
영화에서 스필만은 죽음에 순간에 쇼팽의 녹턴 No 20번을 연주합니다. 많은 클래식 곡들이 있을 텐데 그 곡을 택한 이유는 녹턴을 작곡한 쇼팽이 폴란드인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쇼팽이 살았던 1910년- 1949년의 폴란드와 주인공 스필만이 겪었던 폴란드의 6년간의 상황은 조금 닮아있습니다. 프레드릭 쇼팽은 1810년 당시 나폴레옹 전쟁에서 등장한 단명 국가인 바르샤바 공국의 일부였던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습니다. 1815년 비엔나 회의 이후 폴란드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주변국에 의해 분할되었고 쇼팽의 고향은 러시아 제국에 흡수되었습니다. 스필만처럼 처음에는 자신의 나라에서 활동하다가 순간 나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스필만의 시대의 폴란드가 나치에 의해 점령당했다면 쇼팽 시대의 폴란드는 폴란드 문화와 민족주의를 탄압하려는 러시아 당국의 가혹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학교와 공적 생활에서 폴란드어 사용을 금지하고 폴란드 대학과 문화 기관을 폐쇄했으며 폴란드 문학과 음악을 검열했습니다. 쇼팽의 가족은 이러한 탄압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 독립에 동조한 프랑스 교사였고 그의 정치적 견해 때문에 잠시 투옥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음악 천재로 태어난 쇼팽은 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문화와 전통을 기념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습니다. 그의 곡 중 폴로네즈와 마주르카와 같은 그의 작곡 중 다수는 폴란드 민속 멜로디와 리듬을 기반으로 했으며 폴란드 국가 정체성의 대중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스필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필만은 바르샤바의 독립을 보았지만 쇼팽은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쇼팽은 1830년 20세의 나이로 러시아 통치에 반대하는 11월 봉기가 발발한 직후 폴란드를 떠났습니다. 당시 그는 바르샤바 음악원 학생이었고 이미 도시 음악계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쇼팽의 출국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고 봉기가 끝난 후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갈등은 몇 년 동안 계속되었고 이러한 상황적 스트레스로 쇼팽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당국은 여행과 통신에 제한을 가해 쇼팽이 폴란드로 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쇼팽은 그렇게 파리에 자리를 잡았고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평생 고국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애착을 지니고 살았으며 그것을 언제나 음악에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쇼팽의 곡들을 살펴보면 어느 곡에나 드물지 않게 단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장조로 곡을 시작했다가 중간 어느 순간에는 단조가 등장합니다. 평론가들은 그것이 쇼팽이 살아생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오랜 그리움과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쇼팽은 죽음의 순간 자신의 심장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성 십자가 교회에 묻어달라고 유언했고 그의 심장은 그가 요청한 대로 바르샤바로 옮겨져 교회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쇼팽의 시신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남아있습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스필만은 폴란드 독립 이후 피아니스트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 갔으며 쇼팽의 곡을 많이 연주하였습니다.
6. 영화의 배경 : 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 바르샤바의 시대적 배경 ( 1939년 - 1945년)
히틀러가 총리가 되고 얼마 후 수권법 (독일 법률은 의회 말고도 내각에서 만들 수 있다. 독일 내각은 헌법에서 정한 내용 말고 다른 법을 만들 수 있다)을 통과시킨 후 1933년 3월 24일 히틀러와 니치당의 독재가 시작됩니다. 히틀러는 자신을 밀어주었던 우파 정치인들을 모두 숙청시킨 후 대통령과 총리를 합친 총통이라는 관식을 만든 후 1차 세계 대전에 박살 난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복수의 혈전을 준비합니다. 독일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르사유조약을 맺었는데 그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오스트리아로 진군합니다. 민족주의가 팽창하던 그 시기 같은 게르만족이던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히틀러를 열렬히 환영하고 히틀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스트리아를 접수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가운로 삐죽 튀어나와 있던 나라 체코 슬로바키아에게 너희 나라의 주덴테란드 지역에는 독일인이 많으니 너희도 독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제지에 나섰고 주덴테란드 지역은 독일에게 내어 줄 테니 체코 슬로바키아는 건드리지 말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독일과 영국 프랑스는 뮌헨협정을 맺었지만 6개월 후 독일은 체코 슬로바키아를 침공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독일은 1939년 9월 1일 '할머니가 돌아가겼다'라는 선제공격 암호에 맞추어 폴란드를 침공합니다. 이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유럽의 시대적 상황입니다. 이후 1945년 5월 8일 독일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할 때까지 독일군의 폴란드 점령은 계속되었고 유대인 박해도 계속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실제 6년의 시간 동안 폴란드의 수많은 유대인들은 학살되었고 영화 속 모습처럼 인류의 많은 이들이 아픔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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